지스타에서도 VR이 화두…팬더믹에 콘서트 개최 등 VR 중요성 급부상

보급률은 아직 미미…’VR 성추행’ 가능성 등 제도·윤리 정립도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가상현실(VR)은 정말 게임의 미래일까?

웨어러블 기기를 쓰고 가상현실 공간에 접속해 또 다른 ‘나'(아바타)로서의 모습을 즐긴다는 상상은 수십 년 전 공상과학 소설에서도 흔했다.

그동안은 기술의 한계, 무선통신 속도와 인프라 부족, 실제로 즐길 콘텐츠 부족 등의 이유로 일반 이용자에게 VR은 먼 얘기였다.

하지만 올해는 VR이 새로운 국면을 맞은 분기점으로 기록될 것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의 일상화, 글로벌 주요 업체들의 VR 플랫폼·콘텐츠 강화 등이 맞물리면서 VR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21일 현재 부산 벡스코에서는 국내 최대 게임축제 ‘지스타'(G-STAR)가 한창이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트위치 ‘지스타TV’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열리고 있다. 개막일이었던 19일 누적 시청자 수 39만5천여명을 기록하며 나름대로 흥행하고 있다.

매년 지스타 한쪽에서는 일반 관람객 대상 게임쇼가 열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유명 게임 관계자들이 업계에 인사이트를 던지는 콘퍼런스가 열린다.

올해 지스타 콘퍼런스에서 눈에 띄는 화두는 VR이었다.

지스타 메인 스폰서를 맡은 위메이드의 장현국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2017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레디 플레이어 원’이라는 영화가 미래 모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레디 플레이어 원 세계관에서 사람들은 식량 파동으로 시궁창이 된 현실 세계 대신 ‘오아시스’라는 VR 게임 플랫폼에서 경제·사회 활동을 펼친다.

장 대표는 “이처럼 게임이 일상화될 것”이라며 “인공지능(AI)이 여러 직업을 대체하면, 국가는 직업·소득이 없는 사람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을 줄 것이고, 이런 사람들은 게임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기업 중 VR 산업에 가장 적극적인 페이스북도 옐레나 래치스키 오큘러스 책임프로듀서를 지스타에 보내 VR에 관해 이야기했다.

래치스키 프로듀서는 페이스북의 VR 플랫폼 오큘러스로 관객을 만나서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친구들과 클럽하우스를 만들어 춤출 수도 있고, 파티나 연설을 개최할 수도 있다”며 “스포츠·콘서트 등을 사람들과 함께 관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6년 전에는 VR 공간에서 혼자 영화를 봤는데, 올해는 다른 도시에 사는 친동생을 VR로 만나 수많은 사람과 함께 스페이스X의 우주선 발사를 지켜봤다”며 “우리는 실제 추억을 만들었고, 나는 VR의 진정한 가능성을 엿봤다”며 웃었다.

래치스키 프로듀서가 VR 산업 종사자여서 VR을 과하게 추켜올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코로나 팬더믹이 창궐하면서 실제로 VR 게임은 콘서트 등을 개최하는 대안 공간으로 급부상했다.

선도한 게임은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Fortnite)다.

포트나이트는 원래 무기를 들고 싸우는 TPS(3인칭 슈팅) 게임이지만, 다른 이용자와 교류하는 가상 공간 기능도 제공한다.

이 게임은 올해 4월 미국의 인기 래퍼 트래비스 스콧의 콘서트를 개최했다.

스콧은 고층 건물만큼 거대한 아바타로 등장해 공연을 펼쳤는데, 개별 이용자로 무려 2천770만명이 접속하면서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후 디플로(Diplo), 영 서그(Young Thug) 등 여러 뮤지션이 포트나이트에서 비대면 VR 공연을 개최하면서 흥행을 이어나갔다.

‘마인크래프트’도 4월에 인디 밴드 페스티벌을 개최해 동시 접속자 5천명을 모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포트나이트와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을 대선 홍보 창구로 활용하면서 부쩍 커진 VR 공간의 가치를 방증했다.

물론 VR이 갈 길은 아직 멀다.

최소 수십만원, 많게는 100만원이 넘는 VR 기기의 보급률은 현재 미미한 수준이다.

‘VR 윤리’를 정립할 필요성도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있다.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도덕이라는 규범을 지키며 살고 있다.

가상 세계는 현실과 닮아있지만, 현실을 초월하는 상상과 행동이 가능하다. 더 넓으면서도 섬세한 울타리와 규범이 필요한 이유다.

2016년 ‘퀴VR'(QuiVr)이라는 해외 VR 게임에서는 남성 이용자가 여성 이용자의 아바타를 계속 만지면서 쫓아다닌 사건이 있었다.

물론 두 이용자는 가상으로 만났기 때문에 진짜 신체 접촉은 없었다. 그러나 여성은 남성 이용자 아바타의 손이 자신을 만지는 것처럼 시야에서 움직인 점 등 때문에 실제 성추행처럼 불쾌한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당시 온라인에서는 VR 공간에서의 성추행을 인정할 수 있는지 논쟁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후 QuiVr 게임사 측은 다른 캐릭터에 가까이 다가가면 손 모양이 사라지도록 조처했다. 그러나 남성 이용자에게 징계나 처벌은 없었다.

딜루트(필명) 작가는 올해 저서 『나는 게이머입니다. 아, 여자고요』에서 이를 언급하면서 “가상현실을 실제 현실처럼 느끼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는 VR 기술의 특성상, 사건이 일어났을 때 충격은 실제로 겪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VR은 결국 특정 집단만 즐길 수 있는 콘텐츠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꼬집었다.

[※ 편집자 주 = 게임인은 게임과 사람(人), 게임 속(in)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입니다. 게임이 현실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두루 다루겠습니다. 모바일·PC뿐 아니라 콘솔·인디 게임도 살피겠습니다. 게이머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립니다.]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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